Faceless ethnic medical worker in lab coat and stethoscope taking of transparent gloves after approaching patients for examination in modern hospital

의료붕괴 가속화시키는 정부와 시민단체의 책임

헌법적 의무를 저버린 국가

대한민국 헌법 제34조 제6항은 “국가는 재해를 예방하고 그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으며, 제36조 제3항은 “모든 국민은 보건에 관하여 국가의 보호를 받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더 나아가 헌법 제10조는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고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는 이러한 헌법적 의무를 저버린 채, 오히려 의료붕괴를 가속화시키는 정책을 강행하고 있다. 국민들로부터 의료보험료를 징수하면서도 의료공급체계를 붕괴시켜 결과적으로 국민의 생명권을 위협하고 있는 현실은 헌법 정신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다. 최근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을 비롯한 시민단체들이 제시한 정책 제안들을 살펴보면, 이들이 정부의 잘못된 정책을 오히려 강화하고 의료붕괴를 가속화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는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담보로 한 무책임한 포퓰리즘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Photo of Medical Professionals Wearing Personal Protective Equipment

응급의료 시스템 붕괴 현황

2024년 119 구급대 재이송(응급실 뺑뺑이) 건수가 5,657건으로 2023년 대비 34% 급증했다는 통계는 의료붕괴가 통계적 수치가 아닌 국민의 생명을 위협하는 현실적 위기임을 보여준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최근 연구에서 밝혀진 바와 같이, 유방암 환자의 경우 진단부터 수술까지 60일을 넘길 경우 사망위험이 2.09배 증가한다는 사실이다.

구분수술 시기사망률위험비
조기 수술 그룹60일 미만2.4%1.0
지연 수술 그룹60일 이상6.1%2.09배

출처: 서울대병원, BMC Women’s Health (2025)

필수의료 분야의 붕괴 실상

소아청소년과의 경우 전공의 충원율이 2019년 100%에서 2023년 16.3%로 급락했으며, 이는 유일하게 폐업이 개업을 초과하는 진료과목이 되었다. 지역 거점병원들도 연이어 폐업하고 있다. 김해 중앙병원(452병상)은 2023년 10월 경영난으로 폐업했고, 웅상중앙병원(266병상)은 2024년 3월 폐업하여 해당 지역 17만명의 주민이 의료 사각지대로 전락했다.

진료과목폐업/개업 비율(%)현황
소아청소년과106.0%폐업 > 개업
산부인과93.0%폐업률 90% 초과
외과76.8%높은 폐업률
일반 병원112.3%폐업 > 개업

출처: 건강보험심사평가원 개폐업 현황 (2018-2024)

건강보험 운영의 모순적 구조

정부는 30조원에 달하는 건강보험 누적적립금을 보유하고 있으면서도 필수의료 분야에 대한 적정 수가 지급을 거부하고 있다. 이는 국민들로부터 징수한 보험료를 본래 목적에 사용하지 않는 것으로, 헌법상 국가의 보건의료 보장 의무를 위반하는 행위이다.

연도건강보험 흑자누적적립금필수의료 수가 인상률
20216.6조원20.5조원1.9%
20227.8조원23.9조원1.6%
20234.9조원29.1조원0.5%
20241.7조원30조원(추정)0.5%

출처: 건강보험재정현황 (2021-2024)

의료수가 억제와 시급 상승의 괴리

더욱 심각한 것은 시간당 임금이 32.4% 상승한 반면 의료기관 환산지수는 20.2% 상승에 그쳐 12.2%p의 구조적 격차가 발생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의료기관이 동일한 서비스를 제공하면서도 실질적인 수익성은 악화되는 역설적 상황을 만들어내고 있다.

구분10년간 증가율연평균 증가율
시간당 임금32.4%2.8%
의원 환산지수22.8%2.1%
최저임금66.3%5.2%

출처: 고용노동부, 건강보험심사평가원 (2014-2024)

건강보험공단의 부도덕한 흑자 잔치와 돈 장사

현재 상황의 가장 충격적인 면은 국민들이 치료를 받지 못해 죽어가는 상황에서 건강보험공단이 국민의 의료보험료로 돈 장사를 하며 흑자 잔치를 벌이고 있다는 점이다. 2024년에만 1조 7,244억원의 당기 흑자를 기록하여 누적적립금이 30조원에 육박하고 있는데, 이는 환자들의 목숨값으로 쌓아올린 피로 물든 돈이라 할 수 있다. 더욱 가증스러운 것은 건강보험공단이 의료교육 붕괴로 적자에 시달리는 대학병원들에게 “선지급”이라는 명목으로 돈을 빌려주며 의료붕괴를 방치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의료교육 붕괴를 방치하면서도 교육 붕괴로 적자를 보는 대학병원에 돈을 빌려주며 국민이 낸 의료보험료를 의료가 아닌 금융업에 사용하며, 치료받지 못하는 환자들의 고통을 담보로 한 수익 사업을 벌이는 구조적 모순을 보여준다.

연도응급실 뺑뺑이 건수건보공단 흑자누적적립금환자 피해
20223,159건7.8조원23.9조원암수술 16% 감소
20234,227건4.9조원29.1조원소아과 오픈런 일상화
20245,657건1.7조원30조원(추정)17만명 의료사각지대

출처: 소방청, 건강보험재정현황

이 표가 보여주는 것은 응급실 뺑뺑이가 79% 급증하고 환자들이 치료받지 못해 죽어가는 동안, 건강보험공단은 막대한 흑자를 쌓아왔다는 참담한 현실이다. 매년 쌓이는 수조원의 흑자는 치료받지 못한 환자들의 희생 위에 세워진 것이다.

현재 의과대학과 대학병원의 교육 시스템이 완전히 붕괴된 상태에서 전공의들은 집단 사직으로 교육받지 못하고 있고, 의과대학생들은 실습할 수 없어 교육과정이 중단되었으며, 미래 의료진 양성이 완전히 중단된 상태에서 대학병원들은 교육 기능 상실로 막대한 적자가 발생하고 있다. 이런 절망적 상황에서 건강보험공단은 적자로 고통받는 대학병원들에게 “도와주겠다”며 선지급이라는 명목으로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고 있다. 이는 화재 현장에서 물을 팔아 돈을 버는 것과 같은 파렴치한 행위이다.

정부는 헌법상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보호할 의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의료공급체계를 붕괴시키는 정책을 강행하고 있다. 이는 헌법 제10조 위반으로 국민의 생명권과 행복추구권을 침해하고, 헌법 제34조 제6항 위반으로 재해 예방 및 국민 보호 의무를 방기하며, 헌법 제36조 제3항 위반으로 국민의 보건에 대한 국가 보호 의무를 위반하는 행위에 해당한다.

정부는 국민들로부터 연간 100조원이 넘는 건강보험료를 징수하면서도, 정작 의료공급체계 유지를 위한 적정한 투자는 거부하고 있다. 이는 권리와 의무의 불일치로서 사기적 행정행위에 해당한다. 2023년 기준 총 보험료 수입은 85.7조원, 급여비 지출은 86.3조원, 누적적립금은 29.1조원인데 필수의료 투자는 미미한 수준이다.

현재 한국의 의료진들은 저수가로 인한 경제적 손실로 원가 이하의 수가로 진료하고, 정부가 수가와 지침을 정하면서도 사고 책임은 의사가 부담하는 의료사고에 대한 전적 책임을 지며, OECD 평균보다 적은 의사 수로 더 많은 환자를 진료하는 과중한 업무량과 의료붕괴의 책임을 의료진에게 전가하는 사회적 비난까지 감당하고 있다. 의료붕괴로 인해 환자들이 당하는 피해는 2024년 5,657건으로 34% 급증한 응급실 뺑뺑이, 암수술 건수 전년 대비 16% 감소, 아픈 아이를 안고 새벽부터 대기해야 하는 소아과 오픈런, 17만명이 의료 사각지대로 전락하는 지역 의료 사막화 등 심각한 수준이다.

이러한 참담한 현실에서 정부는 건강보험 적립금의 즉각적 환원으로 30조원 적립금을 환자들의 치료에 즉시 투입하고, 건강보험공단의 대부업 중단으로 선지급이라는 명목의 이자 장사를 즉각 중단하며, 건강보험 급여률 법적 공개 의무화로 30조원 적립금을 투명하게 활용하고, 필수의료 수가 현실화로 응급의료, 분만, 소아과 등에 적정 수가를 보장하며, 의료사고 국가책임제 도입으로 권한과 책임의 일치를 통한 의료진 부담을 경감하고, 비보험 진료 자율화로 의사의 정당한 가격결정권을 회복하는 조치를 즉시 취해야 한다.

시민단체들은 현실을 무시한 포퓰리즘적 주장을 중단하고, 의료공급체계의 지속가능성을 고려한 정책을 제안해야 한다. 무엇보다 자신들이 환자로서 의사에게 기대하는 것과 정책 제안자로서 의사에게 요구하는 것 사이의 모순을 직시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민간의료기관이 공공보험의 통제를 받아서 공공의료를 제공하는 전 세계의 유일한 의료제도를 갖고 있으며 정부와 국민들은 끊임없이 의사들의 무한한 희생을 요구하고 있다. 의료진의 전문성과 자율성을 노예가 아닌 전문가로서 대우하고, 민간의료기관의 경영 현실을 이해하여 지속가능한 의료공급을 위한 최소한의 경제적 기반을 보장하며, 공공의료 확충을 위한 정부 재원 확보를 요구하여 민간에 떠넘기지 말고 정부 예산으로 해결하고, 단기적 포퓰리즘보다 장기적 지속가능성을 추구하여 의료진도 인간이라는 기본 인식을 가져야 한다.

시민단체가 해야 할 자성은 자신들이 병원에서 받고 싶은 진료 수준과 의사들에게 요구하는 경제적 희생 사이의 괴리를 인정하고, 의사를 ‘봉사만 해야 하는 존재’가 아닌 ‘정당한 대가를 받을 권리가 있는 전문가’로 인식을 전환하며, 공공의료는 정부가 직접 투자해서 해결해야 할 문제라는 책임감 있는 자세를 갖는 것이다.

한국 의료체계의 근본적 회복을 위해서는 헌법 정신에 입각한 국가 의무 이행으로 국민의 생명권과 건강권 보장을 위한 정부의 적극적 역할을 하고, 의료공급체계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하여 적정 수가를 통한 의료기관 경영을 안정화하며, 권한과 책임의 일치로 의료수가 결정권과 의료사고 책임의 합리적 분담을 하고, 사회적 합의를 통한 점진적 개혁으로 모든 이해관계자의 의견을 수렴한 종합적 접근을 해야 한다.

현재의 의료붕괴 위기는 정부의 잘못된 정책과 시민단체의 무책임한 요구, 그리고 건강보험공단의 파렴치한 돈 장사가 만들어낸 인재(人災)이다. 환자들이 치료받지 못해 죽어가는 동안 30조원을 쌓아놓고 흑자 잔치를 벌이는 건강보험공단의 행태는 더 이상 용납될 수 없다.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담보로 한 이러한 실험은 즉시 중단되어야 하며, 헌법 정신에 입각한 의료정책의 근본적 전환이 필요하다. 정부와 시민단체, 건강보험공단은 의료공급자인 의사들의 희생에만 의존하지 말고, 환자들의 목숨값으로 쌓은 30조원을 즉시 의료 현장에 투입하여 적자가 나더라도 스스로의 책임을 다하는 자세를 보여야 할 것이다. 그렇게 하는 것이 진짜 공공의료이며 공공의료보험이다.

참고 뉴스 기사

시민사회단체 “행위별수가제로 과잉진료 일상화…공공의대 설치”(종합)

송고 2025-06-12 13:16

(서울=연합뉴스) 권지현 기자 = 시민사회단체들이 이재명 대통령이 약속한 공공의대 설립 추진에 찬성

“혼합진료 금지하고 모든 비급여 진료 관리…늘린 의대 정원 유지해야” “공공병원·보건소 의사 태부족…지방의료원 의사 인건비 年 6억2천까지”

‘새 정부가 추진해야할 보건의료 정책 토론회’

(서울=연합뉴스) 류영석 기자 = 12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전국보건의료노조, 한국노총 등 주최로 열린 보건의료 정책 토론회에서 이수진 의원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2025.6.12 ondol@yna.co.kr

(서울=연합뉴스) 권지현 기자 = 시민사회단체들이 이재명 대통령이 약속한 공공의대 설립 추진에 찬성하며 새 정부가 즉각 이행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늘어난 의대 정원을 유지하고, 의료비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비급여 진료를 통제해야 한다고도 제안했다.

공공의대 설립은 지난 정부 당시 의대 증원에 반발해 1년 넘도록 집단행동을 해온 의사집단이 또다시 반대하는 정책이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환자단체연합회로 구성된 국민중심 의료개혁 연대회의는 12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새 정부의 보건의료 정책에 대한 토론회를 열었다.

남은경 경실련 사회정책팀장은 “작년 경실련 조사에 따르면 공공병원과 보건소의 의사 결원은 각각 42%, 44%에 육박했고 지방의료원 의사 인건비는 최대 연 6억2천만원까지 상승했다”며 “의대가 없는 지자체에 공공의대와 병원을 짓고, 공공의대 졸업 후 의사 자격을 취득하면 일정 기간 지역 공공 의료기관에 근무하도록 하자”고 했다.

공공병상 비율도 현재 10% 수준에서 20%로 올리자고 제안했다.

의료비 부담 완화를 위해 비급여 진료를 관리하고 지불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도 주장했다.

남 팀장은 “최근 10년간 건강보험 재정 지출액은 51조원에서 103조원으로 2배 이상 늘었다”며 “의료공급자에게 행위·재료별로 비용을 주는 ‘행위별수가제’를 시행해 과잉 진료가 일상화하고 재정 지출을 통제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비급여와 급여 진료를 병행하는 ‘혼합진료’를 금지하고 정부가 모든 비급여 진료를 신고받아 관리하는 한편 가격 상한을 제시하자”는 방안과 “행위별 수가제를 진료 과목·지역·성과에 따라 보상하는 지불제도로 개편하고 의료비 총액을 정해 지출을 배분하도록 하자”는 안을 내놨다.

경실련은 이런 주장을 토대로 여당이 내걸었던 대선 공약을 평가하며 “전 정부와 달리 공공의료 인력과 인프라를 확충하겠다고 했는데, 원칙적 방향을 제시한 데 그쳤기에 임기 내 달성 가능한 구체적 기준과 목표가 제시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보건의료노조와 한국노총 또한 공공의대 설치와 공공병원 인력 확충, 혼합진료 금지·비급여 관리를 요구했다.

의정 갈등과 의료 공백 사태의 핵심 요인이었던 의대 정원과 관련해서는 늘린 정원을 유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경실련은 “의약분업 이후 의대 정원 감축과 고령화 등으로 보건의료 인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므로 의대 입학 정원을 5천명 수준으로 유지하자”고 했고, 한국노총은 “공공의대 신설을 전제로 정원을 최소 1천명 늘리자”고 말했다.

한편 환자단체연합회는 “보건의료 정책을 ‘환자 중심’으로 대대적으로 바꿔야 한다”며 “1년 넘게 이어지는 의정 갈등과 의료 공백을 해소하는 한편 환자기본법을 제정하고 보건복지부 내에 환자정책국을 새로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여당 측은 구체적 공공의료 확충 목표치를 수립하겠다고 했지만 비급여 통제에 대해서는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조원준 더불어민주당 보건의료 수석전문위원은 “풍선 효과 등으로 공공의료 확충 목표치를 계산·제시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었다”며 “이후 전문가와 논의하며 목표치를 설정하겠다”고 밝혔다.

비급여 관리에 대해서는 “백내장, 도수 치료 제한은 국민적 공감이 크지만 잘못하면 의료 접근성에 제한을 받는다는 느낌을 줄 수도 있다. 세밀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 위원은 “의료개혁 문제가 의정 간의 대화로만 진행되는 방식을 지켜보았는데, 그 경우 대체로 협의가 이뤄지기 어렵다”며 “의료개혁 안건은 공론화위원회 구조에서 모두 포괄하고 이해 당사자들이 모두 모여 합리적 논의를 통해 결론을 내리겠다”고 강조했다.


[김길원의 헬스노트] 의정갈등 초과사망 없다?…”암수술 지연, 사망위험 2배↑”

송고 2025-06-17 06:13 서울대병원, 유방암 4천여명 분석…농촌 거주자·저소득층 사망위험 3배 높아 “암은 조기 발견뿐 아니라 조기 치료가 생존에 큰 영향”

유방암 <자료사진>

(서울=연합뉴스) 김길원 기자 =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대한민국을 뜨겁게 달궈온 정부와 의료계의 의대 정원 갈등은 의료 현장에 깊은 상흔을 남겼고, 그 상흔은 여전히 치유되지 않고 있다. 가장 큰 피해자는 누구보다 환자다. 특히 암과 같은 중증 질환 환자들은 전공의의 병원 이탈과 의료진 부족으로 수술과 치료가 연기되거나 취소되는 일이 벌어지면서 애간장을 태워야만 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의료 공백이 환자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을지는 짐작만 할 뿐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우려가 단순한 기우가 아닐 수 있음을 보여주는 연구 결과가 제시됐다. 조기 유방암에서조차 ‘진단부터 수술까지 얼마나 빠르게 치료가 이뤄졌는가’가 생존에 직결된다는 분석이 나온 것이다. 유방암은 한국인 여성에게 가장 많이 발생하는 암종이다. 한국유방암학회에 따르면 지난 한 해 동안 발생한 유방암 신규 환자는 3만명을 넘어선 3만665명(여 3만536명, 남 129명)으로 추산됐다. 이는 국내 여성 암 발생의 21.8%를 차지하는 수치다.

한국인 유방암은 평균 진단 연령이 53.4세로 서구 국가보다 10년 정도 젊을 뿐만 아니라 경제활동이 활발한 40대에서 유독 발생률이 높은 게 가장 큰 특징으로 꼽힌다. 다만 국가 건강 검진 활성화에 힘입어 조기 진단이 늘어나고, 유방암의 특성에 맞는 표준 치료가 잘 이뤄지면서 사망률은 낮아지는 추세다.

서울대병원 재활의학과 이자호 교수, 인제대 보건행정학과 정성훈 교수 공동 연구팀은 국민건강보험공단과 중앙암등록사업 통계 자료를 이용해 2008∼2015년 조기 유방암 진단을 받고 1년 내 수술한 환자 4천350명을 대상으로 ‘진단-첫 치료-수술’가 60일 이내 이뤄졌는지에 따른 사망률을 비교 분석한 결과 다음과 같이 나타났다고 17일 밝혔다. 연구 결과는 여성 건강 관련 국제학술지(BMC Women’s Health) 최근호에 발표됐다. 이번 연구에서 유방암의 진단부터 수술까지 걸린 기간이 60일 미만인 환자는 3천625명, 60일 이상인 환자는 725명이었다.

연구팀은 연령, 소득, 지역, 의료기관 유형 등의 다양한 변수를 보정한 후 두 그룹 간 사망률을 분석했다. 그 결과 진단 후 수술이 60일을 넘긴 환자들의 사망률은 6.1%로, 60일 미만인 그룹의 2.4%보다 두 배 이상 높았다. 연구팀은 이 결과로 볼 때 60일 이상 수술 지연 그룹의 사망 위험이 60일 미만에 견줘 2.09배 높은 것으로 추산했다. 치료 기준을 45일로 낮춘 분석에서도 두 그룹 간 사망 위험비는 1.49배 차이를 보였다. 이는 치료의 지연이 환자의 생존에 직접적인 악영향을 미치는 경향성을 명확히 보여준다는 게 연구팀의 설명이다.

특히 치료 지연의 영향은 취약계층으로 분류되는 농촌 거주자(3.12배), 저소득층(2.99배), 동반 질환을 가진 환자(2.66배)에게서 더욱 두드러졌다. 의료 접근성의 불균형과 사회경제적 요인이 암 환자의 치료 결과를 얼마나 심각하게 좌우할 수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자호 교수는 “이번 연구는 유방암 환자에게서 ‘얼마나 빨리 암을 발견했느냐’뿐 아니라 ‘얼마나 빨리 암 치료를 시작했느냐’가 생존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전국 데이터를 통해 처음으로 입증한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이 교수는 “다만 치료가 60일 이후로 지연된 유방암 환자의 비중은 전체 유방암 환자의 1.2%에 불과했다”면서 “이는 우리나라의 의료 접근성이 매우 높은 수준임을 방증하는 것이지만, 향후 의료공백 상황에서 이 비율이 얼마든지 늘어날 수 있다는 경고이기도 하다”고 지적했다.

유방암 환자의 수술을 담당하는 의료진도 이번 연구 결과에 공감했다. 서울대병원 유방외과 이한별 교수는 “조기 유방암의 경우 수술이 가능한 병원에서 하루라도 빨리 수술받는 것이 예후에 중요하다”며 “60일이라는 기준은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생존의 경계선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연구팀은 이번 결과가 조기 유방암 환자에게 60일 또는 45일 이내 수술 착수라는 명확한 치료 목표치를 제시하는 것은 물론 취약계층에 대한 맞춤형 정책(교통·숙박 지원, 거점 병원 확충 등) 마련, 다른 암종과 치료 단계(수술·항암 등)에 대한 후속 연구로 확산하는 근거가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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